'강퇴'lgh6611님에게
환우 e6572003-11-24
반야심경과 생명의학
오까다 가즈요시
chapter6-3. 자주적 생활혁신
자기의 병을 치유하여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은 자기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 달려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병이라는 것을 마치 재난과 같은 자기 자신은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질병의 고통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오류입니다.
질병의 고통은 자기 자신이 자연스럽지 못한 생활을 함으로써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는 자연의 생리적, 심리적 조화를 파괴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참으로 깨닫는다면 우리가 질병의 고통을 느끼더라도 쓸데없이 당황하지 않으며, 의사나 남에게 도움을 구하기 전에 우선 자기 자신의 생활태도나 몸과 마음이 조화로운 상태에 있는지 없는지를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은 정말로 중대하고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위급한 환자들은 질병의 고통을 의사가 없애 주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병의 증세가 점점 더 심해져서 치료하기가 어려워지면 어려워질수록 의사나 약물에 의지하려는 생각이 더욱더 심해집니다.
이때 심기일전해서 자기가 이 같은 만성병으로 고통을 받는 이유는 자기가 무분별하게 생활했거나 자연의 이치를 거역하는 생활을 했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반성해야 합니다. 이처럼 마음의 기틀을 한번 돌이킬 때 질병의 고통이라는 미혹됨이 그대로 깨달음이 되어서 질병의 고통을 없애는 첫걸음을 내디디게 됩니다.
고요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면 병은 자연스럽지 못한 생활이나 조화롭지 못한 심신의 상태가 거듭됨에 따라서 차차 병이 위중해지면서 만성화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질병의 고통을 없애려면 생활을 올바르게 해야 하고 심신의 조화를 꾀하여서 차근차근 병이 낫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만성병이 발생하는 데 생리적, 물리적 시간이 걸리듯이 만성병의 치료에도 당연히 생리적, 물리적 시간이 걸립니다.
이처럼 질병의 고통은 우리의 생활태도에 대한 안전장치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질병의 고통을 액이 끼었다거나 재난을 당했다거나 사악한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병중에는 급만성 전염병이 있는데, 이러한 병에 대해서는 각각 그 병에 주효한 항생물질이나 화학요법을 실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같은 급성, 만성의 전염병들도 감염된 경위를 살펴보면 체력이 약화됐거나 저항력이 감소됐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며 생활이 자연스럽지 못하거나 몸과 마음이 조화롭지 못하기 때문에 야기된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모든 질병이나 고통은 근본적으로는 몸과 마음이 조화롭지 못하거나 생활이 자연스럽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되풀이 하여 말하면, 자기의 병이나 고통을 치료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지 남이 치료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치료한다고 하는 참된 자각의 발생이 가장 중요합니다. 즉 병을 치료받는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치료한다. 나 자신의 힘으로 치료한다.'고 자각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양생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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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히로시마에서 출생하고 동경에서 의대를 졸업, 내과학과 소아학을 전공하여 개업의를 하면서 선(禪)을 배우기도 했다고 하는 저자 오까다 가즈요시는 이 책 <반야심경과 생명의학>을 통해 반야심경에 담긴 의미들을 생명의학적인 관점 속에서 주체적으로 발견하고 해석해 내면서 그러한 생명의 본질에 대한 자각을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 이야기한다.
<반야심경과 생명의학>은 대학시절 읽었던 책인데 다소 신비적 심오함으로 인한 어려움이 있긴 했지만 그 당시 독특면서도 깊이 있는 통찰들과 좋은 내용들로 인해 강한 인상으로 남았던 책이어서 다 읽고 나서도 언제고 다시 한 번 읽어야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얼마전에서야 다시 읽어볼 수 있었다.
많은 좋은 내용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특히 위에 옮긴 글은 질병과 건강에 대한 근본적인 통찰이 담겨있는 좋은 글인 듯 싶다.
그리고 저자는 그러한 관점을 이어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가장 중요시 해야 할 것 세가지 즉 호흡, 식사, 활동을 올바르게 해야 함을 강조한다. 또 저자는 단순한 건강의 관점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인생의 목적이라 할 수 있을 자기완성도 역시 생명의 본질을 자각하고 체득하는 데에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진실로 인간을, 스스로를 구제하려면 식사와 호흡, 활동이라는 이 세가지 원리에 의한 생활을 철저히 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실천적 방법이라할 식사, 호흡, 활동에 관한 내용 중 식사에 대한 부분 안에서 좋은 내용인 듯 싶어 간추려 놓았던 글을 아래에 옮겨본다.
식사의 원리
참된 병치료는 식사를 올바로 섭취하는 것입니다. 식사의 중요함을 올바로 깨우친 뒤 온 마음을 기울여 식사법에 몰두하면 어떠한 난치병도 고칠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신중히 식사를 할 때 식사는 생명을 기르고 마음을 기르는 에너지원으로서 엄청난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하루 세 번의 식사에서 언제나 감사함과 공손함을 실천해야 합니다.
배고픈 상태가 사라졌는데도 음식이 맛있기 때문에 조금 더 먹고 싶은 것은 잠재의식의 욕구입니다. 이 욕구가 탐욕에 의한 집착으로까지 발전하는 것입니다.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은 잠재의식 속에서 싹터 나온 것이며, 먹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먹는 행위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먹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도 시간이 됐기 때문에 먹는 행위, 배가 고프지 않는데도 먹을 것을 보면 먹는 행위, 맛있는 음식이면 절제하지 않고 먹는 행위 등은 습관적 요구에 따른 식생활 방식인데 이는 백해무익한 방식입니다.
참으로 인류가 사해평등, 자타공존, 평화로운 대동단결, 공존공여의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식사에 대한 철저한 참회 없이는 실현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예로부터 음식의 귀중함을 깨우치는 글이 많았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음식은 남기지 않고 먹어야 하며, 선물로 제공받은 음식은 모조리 다 먹어 치워야 음식을 귀중히 여기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음식에 대한 감사와 공경의 참다운 뜻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음식을 귀중히 여기는 사람은 음식에 대해 경건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음식이 곧 목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으로부터 음식을 받들고 감사하면서 신중히 식사합니다. 따라서 음식을 귀중히 여기는 사람은 언제나 약간 적은 듯하게 80% 정도 위장을 채우는 사람이며, 또 언제나 음식의 진가를 100% 발휘하는 사람입니다.
식사가 우리의 성격, 마음, 감정, 정서를 기르는 기본적인 행위이며 마음을 창조하는 행위라는 것을 자각할 때 비로소 식사에 대한 진실한 태도가 저절로 솟아 나옵니다. 또 식사에 대해 감사하고 보은하는 행동은 식사에 대해 만족할 줄 아는 것입니다. 식사에 대해 감사하고 삼가하며 탐욕스럽게 먹지 않는 것이야말로 만족할 줄 아는 행동이며 만족할 줄 아는 마음입니다.
음식물이 입 안에 있을 때는 씹어서 잘게 부수거나 맛보는 등 인간적 노력이 필요하며 이 노력은 스스로 하는 활동입니다. 그러나 음식이 일단 넘어 가면 이미 저절로 되는 작용에 맡길 수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매일매일의 식생활에서 스스로 노력하여 씹는 활동이 저절로 되는 삼키는 운동으로 이행될 때 스스로 하는 것과 저절로 되는 것의 상호전환이 이루어집니다.
극히 적은 음식양으로 신체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음식을 충분히 잘 씹어 본 사람이며 누구나 자연스럽게 알 수 있습니다. 만족할 줄 아는 것은 입 안에서 모든 인간적 노력을 다하여 음식을 완전히 씹을 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지족(知足)의 요령을 터득하는 것입니다.
식사가 고르지 못한 것은 엄격히 경계해야 합니다. 갑자기 먹는 것을 중단하거나 과식의 반동으로 먹지 않는 일 등은 마음을 안정치 못하게 만듭니다. 마음이 어둡고 침울해져 어두운 기운이 되는 것입니다.
음식을 초월하기 위해서는 음식맛을 투철히 이해하고 난 뒤에 음식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음식에 대한 투철한 이해만이 음식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합니다.
식사라는 행위는 근본적으로 음식의 완전연소라는 것을 필요로 합니다. 음식의 완전연소는 음식물의 완전한 저작이 우선 전제되어야 합니다. 입안에서 천천히, 충분히 잘 씹어야 합니다. 씹는 것에 따라서 음식물의 맛을 표면의 맛, 중간의 맛, 깊은 맛으로 음미할 수 있습니다.
맛은 단맛, 쓴맛, 신맛, 짠맛, 떫은 맛 등으로 표현될 정도로 단순치가 않습니다. 곡류이건 과일이건, 해초류이건 채소이건 그 맛은 지극히 복잡미묘하고 다채로와서 체득(體得), 미득(味得)에 대한 체험을 하지 않고는 전체적인 맛을 알 수 없습니다. 또 표면의 맛과 중간의 맛은 본질적으로 달라서 충분히 씹어야만 중간의 맛과 깊은 맛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식사와의 합일, 즉 식사에 철저해야만 식사에서 초월하여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온 몸과 마음을 다하여 식사를 철저히 해야 하며 철저하게 음식을 씹어서 맛보아야 합니다. 이처럼 식사의 진수를 철저히 이해함으로써 사람은 비로소 식사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식사에 철저하다는 것은 잘 씹고 잘게 부수어서 음식물의 깊은 맛을 모두 음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식사에 대한 진실한 마음과 공손히 받드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좋은 음식, 싫은 음식에 구애받지 않고 음식에 대한 집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음식량을 엄격히 정해서 실행해야 합니다. 음식량이 고르지 않는 사람은 마음도 고르지 않아 일정치가 않습니다.
우리의 풍부한 미각생활 속에서 음식물의 맛이나 인생의 맛을 완전히 만끽하면서도 그 맛에 탐닉하거나 집착하지 않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러한 미각생활을 초월해서 벗어나지 않으면 참으로 사람다운 사람은 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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